해외농업개발/식량자원

[포커스] 위기의 식탁, ‘한국의 카길’을 키워라

강철2 2008. 6. 10. 16:42
[포커스] 위기의 식탁, ‘한국의 카길’을 키워라
美 카길(Cargill) 미드랜드(ADM) 벙기(Bunge)
3대 곡물기업이 세계 식탁 90% 점령
‘세계 5대 곡물 수입국’ 해외 식량기지 확보 ‘발등의 불’
생산부터 무역·유통까지 책임질 곡물기업 육성 절실
해외 농지로 눈 돌리는 한국 기업들
MH에탄올 - 캄보디아 현지법인 설립, 에탄올 원료 사업
AFinc - 아프리카 콩고 진출, 서울보다 넓은 농지 임대


국제 곡물 가격 상승에 따른 글로벌 식량 위기가 지속되고 있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중국 내 곡물 생산량의 20%를 차지하는 곡창지대인 쓰촨(四川)성에서 발생한 리히터 규모 8의 강진(强震)으로 인해 13억 인구가 몰려있는 중국에서도 곡물 수급에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가뜩이나 중국 경제성장에 따른 곡물 수요 급증으로 곡물이 부족한 판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때문에 우리나라를 벗어나 해외에서 식량을 확보하려는 노력들이 새삼 주목을 끌고 있다.

▲ 미국 일리노이의 한 농부가 대형 트랙터로 옥수수밭을 일구고 있다. (photo 조선일보 DB)
2001년 캄보디아 농장 사업에 진출한 코스피 상장기업인 MH에탄올(구 무학주정)은 최근 현지 법인을 설립하고 업계 최초로 해외 에탄올 원료 사업에 나섰다. 8000헥타르 규모의 농장에서 에탄올의 원료가 되는 타피오카를 키우고 있다. 또한 캄보디아 정부와 향후 5년 동안 2000만달러어치의 타피오카를 독점공급 받기로 계약을 체결했다. 타피오카에서 생산되는 에탄올은 소주를 만드는 원료로 사용된다.

MH에탄올이 캄보디아를 선택한 이유는 간단하다. 기후조건이나 토질이 곡물의 대량재배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2000년부터 이명박 대통령이 캄보디아 훈센 총리의 경제고문을 역임하는 등 양국 정부 간에도 우호적 관계가 유지되고 있다. 그 때문인지 지난 4월 15일 정부가 밝힌 해외농업기지 확보 계획과 관련해서도 캄보디아가 유력한 검토 대상이 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회간접자본(SOC)을 건설해주고 대량으로 곡식을 경작할 땅을 50년간 제공 받는 방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멀리 아프리카에까지 진출하는 기업도 있다. 농업투자 전문기업인 ‘AFinc’는 지난 3월 19일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주한 콩고 대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기자간담회를 갖고 10만헥타르의 농업용 토지를 30년간 임차하는 계약을 맺었다. 자그마치 서울시 면적의 1.65배에 달하는 땅을 아프리카에 확보한 것이다. 임차한 땅에서는 옥수수, 콩, 카사바 등 주요 식량자원을 재배할 계획이다. 바이오 에너지 원료 작물로 최근 각광받고 있는 자트로파도 기를 예정이다.


유통 채널이 중요하다
유통마저 카길 등 메이저 기업들이 장악
농업기지 개척 앞서 국내 반입 통로 확보해야
 

하지만 해외 농업기지를 개척하기 전에 유통채널 확보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대 농경제학부 김한호 교수는 국내언론에 기고한 한 칼럼에서 “생산`-`물량확보`-`국내반입이란 농산물 유통의 전 과정에 대한 통제력을 높일 것”을 주문했다. 작물의 현지생산도 중요하지만 생산된 작물을 국내로 안전하게 도입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생산 기반 확보 못지않게 곡물 메이저가 장악하고 있는 곡물 유통 부문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서 국내의 식량 전문가들은 국제 곡물가격 상승에 대한 타개책의 하나로 ‘곡물기업’을 키울 것을 권고하고 있다. 곡물기업이란 단순한 곡물 생산자와 달리 곡물의 생산부터 무역, 수송, 보관, 유통에 이르는 전 과정에 관여하는 기업을 말한다.

실제로 최근 한 민간경제연구소는 ‘글로벌 식량위기’에 대한 보고서에서 ‘식량자원의 안정적인 확보를 위해 세계 시장에서 유통 장악력을 높이는 노력이 요구된다’며 ‘미국의 카길과 같은 곡물메이저를 키울 것’을 제안했다. 카길(Cargill)은 세계 곡물 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세계 최대 곡물회사다. 특히 콩, 옥수수, 밀 등 주요 곡물 무역에서 미국의 카길을 포함한 아처 대니얼스 미드랜드(ADM), 미국에 본사를 둔 브라질의 벙기(Bunge) 등 세계 3대 곡물 메이저의 시장점유율은 90%에 육박할 정도다.

압도적인 시장점유율을 바탕으로 이들은 정부의 정책 결정에도 관여한다. 카길의 암스테드 전 부회장은 1987년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 농업협상 당시 ‘예외 없는 관세화(tariffication without exception)’ 방안의 초안을 작성하고 당시 미국 측 대표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2003년 멕시코 칸쿤(Cancun)에서 열린 WTO 농업 협상에서도 카길이 미국 정부 측의 의견서를 대신 작성했다는 후문이 있을 정도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성명환 박사는 “카길의 영향력은 막강한 정보망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전세계 66개국에 15만8000명의 임직원을 두고 있는 카길은 인공위성과 세계 각지의 자회사에서 수집되는 정보력으로 전세계 곡창지대의 작황을 실시간으로 체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카길은 우리와도 관련이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 수입되는 곡물의 60%는 카길에 의해 공급되고 있다. 국내 축산사료 부문 1위 기업인 카길애그니퓨리나 역시 카길 소속이다. 1976년 박정희 정권 때 미국 정가를 흔들었던 ‘박동선 게이트’에 연루된 곡물상(穀物商)도 카길로 알려져 있다. 당시 미국 정부에 대한 로비를 담당했던 박동선씨는 미국 상하원 윤리위원회 증언에서 한국에 대한 쌀 판매로 920만달러를 벌어 그 중 800만달러를 로비용으로 지출했다고 증언한 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