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성장 포럼/녹색성장·기후
[한삼희의 환경칼럼] 한국이 '기후기금' 유치 성공한 이유
강철2
2012. 11. 19. 21:02
입력 : 2012.11.02 23:10
한삼희 논설위원

이산화탄소는 한 번 배출되면 제트기류·무역풍 같은 것을 타고 1년 안에 지구 전체로 퍼져나간다. 사람은 한 번 숨 쉴 때 '5×10^20개', 즉 500,000,000,000,000,000,000 개의 이산화탄소 분자를 뱉어낸다. 이렇게 한 호흡에서 나온 이산화탄소 분자들은 다음 해 봄이나 여름쯤 지구 상 모든 나뭇잎이 광합성을 하면서 들이켜는 공기 중에 단 몇 개씩이라도 섞여 있게 될 정도로 확산성이 높다고 설명한 과학 전문가도 있다. 같은 원리로 지구 어디에서 석탄·석유를 태우더라도 거기서 나온 이산화탄소는 지구 모든 곳의 공기를 오염시키게 된다.
이산화탄소는 수명도 100~200년으로 굉장히 길다. 여간해 비에 씻겨 내리거나 다른 물질과 반응해 모양을 바꾸지 않는다. 따라서 인간이 배출한 이산화탄소는 시간이 갈수록 대기 중에 쌓여간다.
이런 확산성과 축적성 때문에 어떤 나라 혼자 아무리 기를 써봐야 다른 나라가 같이 노력해주지 않으면 온난화는 막을 수 없다. 100~200년 전부터 쌓여왔기 때문에 지금 배출을 줄이기 시작한다고 올라가던 기온이 금방 떨어지진 않는다. 모든 나라가 오랜 기간 함께 배출량을 줄여가야 온난화 저지가 가능하다.
그런데 유럽 국가들은 국민 1인당 연간 10t 정도, 미국은 20t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그래서 풍요로운 소비를 누려왔다. 반면 2~3t밖에 배출하지 못하는 개도국이 허다하다. 산업혁명 이후 대기에 축적된 이산화탄소의 75%는 선진국 책임이다. 그런데도 기후변화의 피해는 주로 개발도상국이 뒤집어쓸 가능성이 크다. 기후변화에 민감한 농업 비중이 크고 온난화에 견딜 수 있는 재정과 인프라가 부족해서다.
이런 상황에서 선진국이 개도국에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같은 수준으로 노력하자'고 하는 말은 먹혀들 수 없다. 그건 '너희 국민은 앞으로도 계속 자동차 타지 말고 냉장고 쓰지 말라'고 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따라서 선진국과 개도국이 힘을 합쳐 온실가스 감축에 나서되 그 과정에서 선진국이 개도국을 도와줘야 한다. 그걸 위해 세계 190여개 기후협약 가입국들이 코펜하겐(2009년)·칸쿤(2010)·더반(2011) 총회에서 녹색기후기금 발족에 합의했다.
이산화탄소는 확산성 때문에 지구 어디건 손쉽게 배출량을 줄일 수 있는 곳에서 줄이면 되는 '감축 장소의 유연성(柔軟性)'이란 특징을 갖는다. 같은 돈을 쓴다면 에너지 효율이 높은 선진국보다 에너지 효율이 뒤떨어진 나라에 투자하는 것이 효과가 크다. GCF가 선진국 돈을 모아 개도국에 투자하기로 한 것엔 그런 이유도 있다.
'연간 1000억달러'라는 기후기금을 국가 간에 어떻게 분담할지, 선진국 기업이 개도국의 에너지 효율화에 투자하는 민간사업 비중은 얼마로 할지는 정해진 게 없다. 선진국과 개도국 간에 지금부터 힘겨루기가 벌어질 것이다. 한국은 온난화의 역사적 책임이 선진국보다 가벼우면서 원조받던 처지에서 원조하는 입장으로 바뀐 나라다. 선진국 그룹과 개도국 그룹의 양쪽으로부터 서로 자기네 입장을 반영해줄 거라는 기대를 받을 수 있었던 게 GCF 유치 성공의 한 이유일 것이다.